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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 김동성은 1980년 2얼 9일 생이다. 주종목은 1000m, 1500m 이며 175cm, 68kg이다. 스케이트를 처음 타기 시작한 건 김동성이 7살 때였고 종목은 스피드 스케이팅이었다고 하며 2년 후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국가대표를 은퇴한 후에는 해설위원을 하였다. 현역 시절에는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 2차례 세계선수권 종합 우승, 1999-00, 2001-02 시즌 월드컵 종합 우승을 기록했다.
김동성은 1996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을 통해 시니어 무대에 데뷔했다. 1997 주니어 세계선수권에서 각종 기록을 세우며 평정한 후 곧바로 다시 시니어 대표팀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첫 해만에 1997 세계선수권에서 당시 겨우 만 17살의 나이에 강력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차지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했다. 당시 500m 은메달 1000m,3000m 금메달로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5000m 계주에서도 우승을 차지하였다.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은 김동성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한 올림픽이였다. 바로 날들이밀기로 금메달을 받았다. 1000m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중국의 리자쥔과 경합을 벌일 때 날들이밀기로 짜릿하게 금메달을 받았다. 이 때 그가 0.053초 앞섰으며 경기 결과가 나오고서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심판에게 몇 번이나 되물어봤던 리자쥔의 모습이 당시 방송을 탔다. 이후 모든 쇼트트랙 선수들은 결승선을 통과할 때 날을 들이밀게 되었다. 쇼트트랙 선수로 신장이나 체격이 딱 알맞게 좋은 편으로 스피드, 지구력, 테크닉, 강한 정신력 등 당시 선수들보다 한 단계 위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특히 국제무대 데뷔 이후로 중-장거리 최강자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 선수들이 좀처럼 힘을 못 쓰는 500미터에서도 세계선수권에서는 금메달과 은메달을 한 개씩 받았을 정도로 약한 편이 아니었으니 거의 올라운더라고 봐도 될 정도다. 상당한 실력파지만, 다음 올림픽에서 인생의 전환기가 일어났다.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는 온국민의 분노를 사는 사건이 일어났다.
1,500m 결승전에서 첫 번째로 들어온 뒤 제임스 휴이시(심판)가 아폴로 안톤 오노의 진로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금메달을 빼앗으면서 그의 쇼트트랙 인생에서 엄청난 파란기를 일으켰다. 그 당시 1500m 결승에서 1등으로 들어온 뒤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심판이 실격을 줬기 때문에 어이상실한 표정으로 태극기를 바닥에 던지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 때문에 2002년 이후 한동안 국내에서 반미 감정이 극에 달한 적이 있었다. 그해 6월 10일에 열린 2002 한일월드컵 미국전에서 안정환(김동성 역)과 이천수(안톤 오노 역)가 오노의 할리우드액션 세레머니를 하면서 한 번 더 반미감정이 확인되었다. 게다가 3일 뒤인 6월 13일에 미선이 효순이가 미군 장갑차에 압사당하는 사고가 나서 이래저래 2002년은 미국에 대한 경멸과 불신 및 반미감정의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였다.
은퇴를 하면서 '더 이상 자기와 같은 선수들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 심판이 되어보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은퇴하자마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 영어를 배우던 와중에 워싱턴 DC에 있는 공식 홈페이지에 있는 학부모들이
학생들을 가르치면 어떻겠냐는 건의를 하였고 이 조건을 승낙해 현재는 코치로 일하고 있다.
김동성은 대한민국에서 최연소로 병역 특례를 받은 선수였다. 1996 하얼빈 동계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따 16살에 일찌감치 병역 특례를 받았다. 김동성이 선수 시절에는 국민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았으나 은퇴후에는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심하게 말하지면 현재는 국민역적 수준까지 추락하였다. 사실 그의 부부 관계나 여성 편력에 관한 말들은 조금씩 있어왔고 불륜 논란에 휩싸인 스포츠 스타가 국내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김동성의 경우 불륜 상대로 지목된 여성들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주범 측 관계자 중 하나이거나, 친어머니를 죽이려고 한 패륜아 등 반인륜적이고 부도덕한 범죄자라는 것 때문에 더 큰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장시호와 함께 최순실의 집에 얹혀 살거나 살해청부 여교사라는 여성으로부터 수억 원어치의 선물을 받아내는 등의 행적으로 돈 많은 범죄자들만 노리는 제비족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이 하나둘씩 터지면서 재평가 받았다. 그것은 바로 장시호와의 불륜 사건이다. 최순실의 조카인 장시호와 교제하고 있었으나, 장시호가 계획하던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이권 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강릉시청 쇼트트랙팀 창단 감독직 제의를 거절하여 장시호와 결별하고, 그로 인해 빙상계에서 사실상 쫓겨난 것으로 드러났다. 본인의 발언에 의하면 감독직 거절에 대해 무언가 알고 한 것은 아니나, 공무원이 제안한 것에 대해 이상하게 느껴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이규혁이 차지했다. 그런데 이규혁은 법정에서 장시호와 김동성이 연인 관계였고,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도 둘이 기획한 것이지만, 사이가 틀어지면서 자신이 영재센터 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장시호는 2015년에 김동성과 사귀었다고 하면서 이 말을 일부 인정했다. 심지어 이혼도 안 한 상태에서 집을 나와 최순실의 집에서 둘이 같이 살았다고 한다. 3월 31일, 김동성은 '결혼 전인 1999년경 1년 정도 교제하다 결별했으며, 아내도 두 사람이 과거에 사귀었던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반박했으나, 훗날 상간녀 소송에서 장시호가 패소하면서 모든 게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영향인지 김동성은 아내와 결혼한 지 14년 만에 합의 이혼했다. 김동성은 원만하게 합의 이혼했으며 양육권은 전 부인이 가져가기로 했다고 하며 장시호와 무관하다고 입장을 표명했다.
하지만 그 후 전 부인이 김동성의 상간녀들을 상대로 위자료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또다시 불륜 논란에 휩싸이게 되어 여자 관계에 대한 비난을 받았다. 또한 2021년 최근에 김동성이 다시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오고 있었다 .바로 양육비 미지급으로 인한 배더파더스에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김동성은 전 부인과 이혼 당시 2019년 1월부터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김동성이 한 아이당 150만 원씩, 매달 지급하기로 합의하며 이혼했는데 김동성이 2020년 1월부터 양육비를 주지 않고 있다고 전 부인이 주장했다. 전 부인은 이후 산하기관인 양육비이행관리원에 양육비 이행명령 소송을 접수했고, 현재 김동성이 미지급한 양육비는 1500만원이라고 전했다. 또한 전 부인에 따르면 양육비를 미지급하기 직전인 작년 12월, 김동성은 애인에게 230만 원짜리 코트를 선물했다고 한다. 결국 배드 파더스에 등재되었다. 이후 김동성은 전 부인에게 양육비 일부를 지급, 향후 자기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을 약속하고 그의 신상은 배드파더스에서 삭제됐다. 하지만 6개월 만에 배드파더스에 다시 등재됐다. 선수시절에는 국민 영웅이였으나, 현재는 국민역적으로 몰락하였다. 그러나 은퇴후의 행실로 인해서 과거에 쌓아왔던 평판을 무너뜨렸는데 한명의 팬으로써 참으로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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